삶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답을 구하려고, 그들은 슈퍼컴퓨터를 만들었다. Deep Thought라는 이름의 그 기계는 750만 년을 계산했다. 마침내 답이 나왔다. 42였다.
더글러스 애덤스가 1979년 『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』에 그린 대목이다. 궁극의 답이 고작 42라니.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다.
답을 받아 든 사람들은 당황한다. 42가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. 답은 여기 있는데, 정작 그 답이 대답하는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무도 몰랐다. 그래서 그들은 Deep Thought에게 되묻는다. 그럼 질문이 뭐였냐고. Deep Thought는 그것까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답한다. 대신 그 질문을 계산해낼 수 있는 더 크고 정교한 컴퓨터를 설계해주겠다고 한다. 그렇게 만들어진 두 번째 컴퓨터가 — 지구였다.
이 대목이 애덤스의 진짜 농담이다. 그리고 이것은 농담만은 아니다. 답을 얻는 순간, 그 답은 종착점이 아니라 더 큰 질문의 출발점이 된다. 궁극의 답을 손에 쥐고도 그들이 한 일은 쉬는 게 아니라 더 큰 컴퓨터를 짓는 것이었다. 앎이 새로운 무지를 열고, 그 무지가 다시 묻게 만든다. 애덤스는 이 끝없는 순환을 40년도 더 전에 웃음으로 그려놨다.
그리고 지금, 그 컴퓨터가 진짜로 만들어지고 있다.
2026년, AI 시대를 연 사람 중 하나인 얀 르쿤이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. 얼마 전 메타를 나와 새 연구소를 차린 그는, 오늘의 챗봇들이 근본적인 한계에 갇혀 있다고 본다. 텍스트를 아무리 삼켜도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른다는 것이다. 그래서 그가 향하는 곳은 "월드 모델"이다. 지식을 그저 쌓아두는 게 아니라, 필요할 때 불러오고 조합하고 고쳐 쓸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기계. 더 나은 답을 내는 기계를 향한 경주에서 그는 한 발 앞서 가려 한다.
그런데 바로 그 르쿤이, 인터뷰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. 그런 기계가 다 만들어진 뒤에도, "무엇을 물을지, 무엇을 만들지, 무엇을 창조할지 알아내는 일에는 여전히 인간이 필요할 것"이라고. 그게 진짜 인간다운 몫이라고.
애덤스가 소설로 풍자했던 자리에, 40년 뒤 세계 최고의 AI 연구자가 진담으로 서 있다. 답은 기계가 낸다. 하지만 무엇을 물을 것인가는, 여전히 사람의 자리다.
어떤 답이든, 그것이 말해지고 계산되는 순간 이미 최종이 아니게 된다. 42가 그랬듯이. 르쿤의 월드 모델이 제아무리 정교해져도, 그것이 내놓는 답 또한 결국 하나의 42일 것이다. 더 정밀한 42이지, 마지막 답은 아니다. 0.9도 0.99도 0.999도 끝내 1에 딱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. 그러나 그 9를 멈추지 않고 이어가면 이미 1인 것처럼 — 마지막 답은 답들의 줄 끝에 있지 않고, 묻기를 멈추지 않는 그 과정 안에 이미 있다.
그래서 AI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말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. 기계는 점점 더 나은 답을 낼 것이다. 어쩌면 대부분의 답에서 인간을 앞지를 것이다. 르쿤의 말처럼, 인간은 자기보다 똑똑한 참모들을 거느린 사람처럼 그들과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. 하지만 참모가 제아무리 똑똑해도, 무엇을 물을지 정하는 자리만은 비어 있다. 그 자리는 답으로 채워지지 않는다. 오직 질문으로만 채워진다.
생각한다, 고로 존재한다. 오래된 그 명제를, 이제는 이렇게 고쳐 읽어도 좋겠다. 묻는다, 고로 존재한다. 생각의 뿌리에는 언제나 물음이 있으니. 답이 아무리 흘러넘쳐도,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여전히 묻고 있다는 데 있다.
출처: BBC — Artificial intelligence: Yann LeCun works on more flexible AI